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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상처 받았다…‘내란 청산’에서 통합과 민생으로 [비상계엄 1년- 대한민국의 오늘]

尹파면·정권교체로 정치적 심판 일단락
‘내란 청산’ 국면 끌수록 설득력 잃을 것

지난 9월 6일 법정에 들어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왼쪽). 작년 12월 7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윤 당시 대통령(오른쪽). [사진공동취재단-대통령실 제공]

[헤럴드경제=김아린·이영기 기자]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유신의 마지막 해인 1979년 이후 45년 만이었다. 1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바뀌었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발동하려 든지 122일 뒤인 지난 4월 3일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인용으로 파면됐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열린 6·3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은 교체됐다. 구속 중인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집권 후 전 정부를 겨누어 출범한 3대 특별검사팀(내란·김건희·순직해병)은 이례적인 지원 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헤럴드경제에 “이제는 징벌과 심판을 넘어 갈등과 분열을 씻고 국민 삶을 돌아봐야 할 시간”이라고 입 모아 말했다.

심판은 특검에 맡기고 정치는 통합을

양승함 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는 “작년 계엄 사태 때 한국은 한 지도자에 의한 엄청난 권력 남용을 민주적 절차를 통해 빠르게 바로잡는 민주주의 내구성을 증명했다”면서도 “다만 계엄 해제 이후 우리 사회는 통합과 안정이 아닌 갈등 상태에 놓여있다”고 했다.

양 교수는 계엄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 윤 전 대통령의 파면과 현 여당의 압도적 대선 승리로 일단락됐다면, 사법적 심판은 특검을 통해 내려지게 될 수순이라고 했다. 그는 “계엄은 종료됐다”며 “남은 심판은 특검 수사와 재판에 맡겨두고, 정치는 지난 1년간 펼쳐진 극한 대립으로 인한 모두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심판 국면이 길면 길어질수록 갈등상태도 장기화할 것”이라며 “계엄에 관한 책임을 묻는 작업은 핀포인트로 빠르게 매듭지어야 한다”고 했다.

양 교수는 계엄 이후 현재까지도 대화할 수 없는 상대로 서로 낙인찍고 평행선을 달리는 대립 구도가 극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원인 중 하나로 지지층에게만 호소하는 팬덤 정치를 지목했다. 과거에는 양극화가 이념 대결의 모습을 띠었다면, 지금은 ‘우리 편’만 바라보면서 획일화된 여론만 접하며 확증편향을 키우는 방식으로 골이 깊어지고 있다고 했다.

양 교수는 “양측 다 강성 지지층의 선택을 받는 정치인이 득세하고 있다”며 “대화와 협치의 메시지를 던지는 정치인이 나오기 어려워진 환경”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 지도자들이 지지자들 만의 리더가 아닌 전 국민의 리더가 되어달라”고 주문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기일인 지난 4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대로에 경찰버스가 차벽을 이루고 있다. [임세준 기자]

기성 정치에 실망한 청년들 보듬어야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 명예교수는 작금을 ‘어른이 실종된 시대’라고 평했다.

곽 교수는 “광장에 모여든 청년들이 아이돌 콘서트에 참석하듯 발랄하게 저항을 표현하는 모습이 굉장히 새로웠다”며 “대학가에서 근엄하게 데모를 했던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청년들은 마치 즐기듯이 그러나 강력하게 계엄에 반대했다”고 했다.

곽 교수는 계엄 정국 때 정치권은 서로 ‘2030세대는 우리 편’이라고 증명하듯이 앞다투어 청년들을 호명했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한쪽은 청년들이 응원봉을 든 장면을 자신들의 것처럼 차용했고, 또 다른 한쪽은 탄핵 반대 시위에 청년들이 있음을 강조했다”며 “청년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기 보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었다”고 했다. 이어 “남성 청년들은 ‘이대남’ 여성 청년들은 ‘개딸’이라고 이름 붙이고 색깔로 구분하려 든 것이 기성세대”라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청년 세대는 정파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 나름의 가치관에 따라 목소리를 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그는 “조국 사태 때도 마찬가지로 공정이란 가치가 훼손됐다고 느낀 청년들이 반발했다”고 예를 들면서 “어떤 정당이나 진보·보수 등 진영 논리에 따르기 보다는 이슈마다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청년들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저성장 속 희망을 갖기 힘든 청년들에게 계엄이라는 충격이 가해지고 그 수습 과정에서 기성세대가 또 한 번 상처를 줬다고 했다.

곽 교수는 “나라가 만신창이인데 기성세대 특히 정치인들은 품위와 어른다움을 잃고, 혼란 속 청년들이 존경하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청년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작년 12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포스트 계엄 사법 개혁, 사회적 합의 담보돼야

계엄 이후 불신을 자초한 법원에 대한 ‘사법 개혁’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이인호 중앙대 로스쿨 헌법학 교수는 “입법·사법·행정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상 대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재판을 맡을 전담 재판부 설치·이 대통령 임기 중 대법관 증원·비(非)법관이 법관 인사를 담당하도록 하는 법원행정처 폐지 등이 여당 사법개혁안의 골자다. 이같은 사법부를 향한 개혁 공세에는 대법원의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이나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판사의 윤 전 대통령 구속 취소 등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이 교수는 계엄을 계기로 헌정 질서를 회복한다며 진행되는 사법 개혁 과제들이 “도리어 헌법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란 전담 재판부를 두고 특정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를 따로 지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논란이 일었고, 이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다수가 되도록 대법원 구성을 바꾸는 것은 사법부 장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법원행정처 폐지에 대해서는 외부에서 법관의 인사에 관여하게 되면 사법부 독립이 깨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교수는 “입법 권력이 사법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와해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며 사법 개혁은 정치적 논리보다는 충분한 공론화와 사회적 숙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5년짜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4년짜리 국회’가 헌법의 권력 분립 질서를 무시하는 것 역시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작년 12월 14일 오후 국회의사당. [임세준 기자]

‘내란 청산’에 민생 뒷전 되어선 안돼

김윤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소위 ‘내란 척결’ 또는 ‘내란 종식’이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계엄에 대한 심판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나 소수자·약자를 위한 정책보다 우선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가 양극화돼 있기 때문에 ‘내란 척결’이 진영 논리로 한동안 지지를 받을 수 있겠지만, 내란 척결을 국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거나 이에만 몰두한다면 상당히 우려스럽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때 전 정부를 겨냥한 ‘적폐 청산’에 다른 과제들은 상대적으로 가려진 경험이 반복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계엄에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정권 교체가 됐기 때문에 이미 선거 민주주의 회복을 달성했다”고 했다. 이어 “내란 청산과 민생 돌보기가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내란 청산을 불필요하게 끌지 않고 적당한 시점에 국민 삶 개선으로 국정 의제를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김 교수는 당장 국민들이 피부로 겪고 있는 주거나 일자리, 빈곤 등 민생 문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내란 청산이라는 대의명분은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여전히 구직은 어렵고 젠더 불평등도 심각하고 노인 자살이나 빈곤도 세계에서 최악 수준”이라며 “국민들은 ‘계엄은 끝났고 선거도 이겼지만 삶이 달라진 게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