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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마약 사업은 드라퍼로 완성된다…지게꾼은 어느새 마약 총책이 됐다 [백색가루의 종착지]

백색가루의 종착지 : 쓰고 버려지는 청년들
<파트3> 드라퍼로 완성되는 블랙마켓
② 상선 위 상선…거미줄 같은 마약 유통
거미줄 마약 유통 구조 대해부

[백색가루의 종착지]
마약 전달책, 드라퍼가 소포장해 뿌리는 마약은 ‘큰손’들이 외국에서 들여온 마약의 극히 일부다. 마약을 법적으로 단호하게 금지하는 한국. 마약 총책들에겐 그래서 ‘돈이 되는 나라’다. 어떻게든 마약을 들여 유통하기만 하면 엄청난 마진을 붙여 팔 수 있어서다. 헤럴드경제는 경찰이 수사했던 3계국 연계 마약 유통망을 더 깊숙이 들여다봤다. 총책들은 한국 마약 시장에 선을 대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2계가 검거한 3개국 연계 조직의 마약 전달 장면. 2023년 4월 대구의 한 주차장에서 총책의 지시를 받은 한국인 국내 유통 책임자가 자신의 차량 안 필로폰을 가리키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헤럴드경제=이영기 기자] 마약 범죄는 잡초 같다. 그래서 최말단의 드라퍼는 뿌리가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생겨난다. 뿌리를 뽑아야만 하나의 유통 구조가 무너진다. 드라퍼 위의 딜러, 그 위 밀수 담당, 제조 담당 등 ‘상선 위 상선’을 타고 올라가야 뿌리를 뽑을 수 있다. 마약 유통 구조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헤럴드경제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2계가 국가정보원과 함께 약 3년 추적한 끝에 차례대로 검거하며 드러난 ‘캄보디아-나이지리아-중국’ 3개국 연계 마약 범죄의 구조를 조명했다. 또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공소장과 판결문, 경찰 조사 내용 등을 확보해 범죄 과정을 재구성했다. 이들에게 한국은 돈이 되는,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이를 통해 드라퍼를 만들어내는 마약 유통의 전체 과정을 살펴봤다. 해당 사건은 해외 조직으로부터 국내로 마약이 들어오는 과정부터 국내에 유통되는 과정 전반을 분석할 수 있는 대표 사례다.

해당 사건의 일당들은 나이지리아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마약류를 국내로 밀수입한 후 국내 인력을 통해 유통했다. 특히 나이지리아 일당은 이번 사건 외에도 수년간 국내에 마약 유통을 시도해 왔다.

지게꾼에서 총책으로…점점 커지는 마약사범

범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건 송규민(가명·50대·복역 중) 씨다. 송씨는 2015~2016년 밀수책인 지게꾼으로 활동했다. 2016년 5월 필리핀에서 필로폰을 세 차례 국내로 갖고 들어왔다. 당시 송씨가 밀수입한 양은 최소 901g(약 2만7000회 투약량)으로 추정된다. 그는 검거돼 재판에 넘겨졌고 4년 6개월 실형을 살고 출소했다. 송씨는 이때 교도소에서 향후 중국계 총책이 되는 박춘경(가명·40대·적색 수배 중) 씨를 만났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수사2계가 검거한 ‘나이지리아-캄보디아-중국’ 3개국 총책 연계 국내 마약 유통 범죄 구조도. 공소장과 판결문, 경찰 조사 내용 등을 종합해 정리했다.

자유의 몸이 된 송씨는 2년간 잠잠하게 지냈다. 그러다 2022년 7월엔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그가 다시 움직인 건 이듬해부터였다. 한국에 마약을 유통할 선을 찾던 나이지리아의 유통 총책 ‘K·제프’(59)와 연결되면서다. 나이지리아 총책은 자신들의 마약을 송씨에게 명목상 ‘보관’해달라고 부탁했다. 수사기관은 실제론 유통을 요청한 것으로 추정한다.

나이지리아 조직은 부산항을 통해 헬스보충제 통에 나눠 담은 필로폰 약 20㎏을 반입했다. 캄보디아에 있어 직접 나설 수 없었던 송씨는 2023년 3월께 과거 자신과 마약을 거래했던 남수찬(가명) 씨에게 나이지리아 조직의 물량을 받을 것을 지시했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2계가 검거한 3개국 연계 조직이 국내로 밀수한 필로폰 압수품. 헬스보충제 5통에 나눠 위장했다. [서울경찰청 제공]

남씨는 이후 송씨의 지시에 따라 국내 유통책 역할을 도맡았다. 남씨는 서울·대구·창원·오산 등을 오가며 약을 전달하고 다녔다.

특히 남씨는 송씨의 교도소 동기인 박춘경씨 계통의 국내 유통책에게도 약을 전달했다. 이로써 나이지리아 조직을 통해 국내로 반입된 필로폰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유통되는 구성을 갖췄다.

다행히 당시 경찰이 국정원의 첩보를 통해 발 빠르게 나섰다. 본격적으로 필로폰이 유통되기 전에 일당을 검거하고 물량 18.7㎏을 압수했다. 이들은 국내에서 수많은 전달책(드라퍼)를 고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남씨가 물량을 확보한 뒤 약 1개월 만에 검거됐는데도 국내 유통을 맡은 드라퍼 22명이 줄줄이 붙잡혔다.

경찰은 2023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송규민 씨를 송환한 후 구속했다. 송씨는 지난해 법원에서 징역 12년을 확정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송씨가 검거되며 캄보디아에서 국내로 마약 유통을 지시하던 한국 조직은 와해됐다.

한국 살았던 나이지리아인, 끊임없이 한국 유통 시도

한국 유통 중계 조직이 사라졌지만 제프의 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2023년 12월에도 한국에 약을 유통하려고 시도했다. 제프 일당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웨덴 국적의 고령층을 속여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약을 운반하게 시켰다. 서울청 마약수사대는 이들 또한 검거하고 필로폰 약 6㎏을 압수했다. 총책인 제프의 정체도 조금씩 특정해 나갔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대규모 마약을 밀수출해오며 은신 중이던 국제마약조직 총책 K·제프(59)가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검거되는 모습.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TCIC)는 지난 2월 나이지리아 마약법집행청(NDLEA)과 공조해 검거에 성공했다. [국가정보원 제공]

제프는 한국 사정에 밝은 인물이다. 2000년 12월 국내에 입국해 7년간 한국에서 생활했다. 제프는 2007년 9월 대마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듬해 2월 강제 추방됐다.

제프는 그 후 나이지리아에서 국내로 약을 유통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다. 3개국 연계 유통보다 앞선 2021년 6월에는 향신료로 위장한 대마 6.3㎏을 가나에서 국내로 발송하는 등 국내 체류 중인 나이지리아 조직원과 연계하다가 이미 적발된 바 있다. 제프는 수년간 반복적으로 마약류 밀수·유통에 관여한 것으로 국내 수사기관은 보고 있다.

경찰은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리고, 나이지리아 마약단속청 당국자에게 대상자의 검거를 요청했다. 쉽게 검거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올해 2월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는(TCIC)는 나이지리아 마약법집행청(NDLEA)과 공조해 국제마약조직 총책 K·제프를 현지에서 검거했다. 현재 그는 나이지리아 현지 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송환 가능성은 낮다.

마지막으로 적색 수배 대상자인 박춘경 씨는 조선족 계통의 조직원들을 이용해 최근까지도 국내로 마약을 뿌리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추정한다. 박씨도 2019년 4월 국내 체류 중 마약류 관리법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중국으로 추방된 이력이 있다.

그도 중국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국내에 마약을 대려는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조직원을 이용해 국내로 필로폰 5㎏을 밀반입하려다 세관에 범행이 적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