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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트럼프에 익숙해지는 세계


‘일탈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deviance)’라는 말이 있다. 사회적·조직적 규범이나 규칙에서 벗어난 행동이 집단 내에서 점차 정상적 행동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상이다. 미국 사회학자 다이앤 본 컬럼비아대 교수가 주창한 말로, 일탈이 정상화되면 초기 경고 신호가 무시되고 결국 더 큰 재난이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2025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1년차는 이런 현상이 국가 단위에서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목도한 해였다.

첫 타깃은 ‘관세 폭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취임 다음날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25% 부과 검토를 시작으로 예상밖 발표를 하거나 상식밖 위협으로 교역상대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유연성’을 발휘한다며 참모진 말을 뒤집기 일쑤였고, ‘2주내’ 등 모호한 발언으로 관세를 협상카드로 휘둘렀다. 세계는 불확실성 공포에 시달렸지만, 트럼프는 이를 ‘협상의 기술’로 포장했다. 중국으로 수출 허가를 원하는 엔비디아에 사실상 ‘수출세’ 요구하고, 반도체 보조금을 빌미로 인텔 지분을 확보한 행보 역시 자유무역주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였다.

‘세계 금융의 심장’인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흔들기는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멍청이, 재앙’ 등 원색적 비난을 일삼으며 사임을 압박했다. 또 자신의 ‘경제책사’인 스티븐 마이런을 연준 이사로 임명하고, 최측근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을 ‘잠재적 연준의장’이라 칭하며 연준 독립성을 정면으로 위협했다. 헤지펀드 대부 레이 달리오가 “트럼프의 연준 개입은 1930년대 독재”라고 비판한 이유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도 “연준의 정치화는 금융시장 대혼란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내 정책은 더 거칠었다. 취임 직후부터 대학 길들이기에 나서더니 ‘범죄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로스앤젤레스, 워싱턴DC, 시카고 등에 주방위군을 투입했다. 헌법이 제한한 자국내 군동원령을 감행한 것이다. 지난 9월에는 미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에서 한국인 317명을 구금해 한미 경제협력 신뢰를 흔들었다. 역사상 최장기간인 43일 셧다운(연방정부 업무정지) 기록도 그의 손에서 다시 쓰였다.

트럼프 집권 2기 초반은 충격의 연속이었지만 혼란이 반복되며 충격은 무뎌졌다. 놀라움이 익숙함으로 변하고, 비판 대신 체념이 자리 잡았다.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난다)’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제 시선은 미국 대법원과 미국민에 향한다. 연방항소법원은 2심에서 상호관세를 불법으로 판단했고, 대법원은 연내 판결을 예고했다. 위법 판결은 세계경제에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는 트럼프 통치력을 가늠할 무대다. 그의 지지율은 지난달 집권 2기 최저치인 36%까지 떨어졌다.

다이앤 본 교수는 명백히 안전하지 못한 관행이 즉시 재앙을 일으키지 않으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과정을 ‘최종 재앙이 발생하기 전 장기간의 잠복 기간’으로 정의했다. 2026년 트럼프 재집권 2년차. ‘미국 우선주의’가 세계 질서와 미국 민주주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천예선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