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연구용역 진행…연금법 개정 절차도 거쳐야
외화채 발행 시 달러 매입 수요 분산, 환율 안정 기대
수익률 감소, 국민 노후소득 활용 우려 논란
외화채 발행 시 달러 매입 수요 분산, 환율 안정 기대
수익률 감소, 국민 노후소득 활용 우려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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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6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 |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 역사상 첫 외화표시 채권 발행을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기금이 직접 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는 대신 해외에서 외화자금을 조달해 투자에 활용하는 구상이다. 그동안 ‘무(無)부채 연기금’을 유지해온 국민연금이 외화채 발행을 논의한 전례는 없었다.
9일 정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외화채 발행 필요성과 타당성 등에 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이를 토대로 관련 법 개정 추진 여부도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이 역외시장에서 외화채를 발행해 해외 투자 자금 중 일부를 조달하게 되면 국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
국민연금은 최근 몇 년간 해외투자 비중을 크게 늘리면서 이에 필요한 연간 달러 수요 역시 급증했다. 환율이 불안정한 시기에는 국민연금의 달러 매수량이 시장의 균형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기금운용 공시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운용 자산 1361조 2000억원 중 해외 주식(508조2000억원)과 해외 채권(96조600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44.4%에 이른다. 여기에 대체투자(해외투자분)까지 고려하면 전체 자산 중 절반 이상이 해외에 투자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검토 중인 외화채는 달러·유로 등 외화 표시 채권을 해외 투자자에게 직접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전력·수출입은행 등 국내 공기업들이 꾸준히 활용해온 조달 방식과 기본 구조는 동일하다. 금리는 통상 미국 국채(UST) 금리 + 스프레드 구조로 결정된다. 국민연금의 신용도와 한국 국가 신용도, 채권 희소성 등이 스프레드를 좌우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외화채를 발행해 일부 해외투자 자금을 직접 조달하면 현물환 시장에서 원화를 팔아 달러를 확보해야 하는 규모가 감소한다. 신규 해외투자 자금의 달러 매입 수요를 분산시켜 외환시장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수익률 저하와 리스크 확대다.
외화채는 일종의 채무로,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줄어들 여지가 있다. 또 세계 금융 시장의 여건이 악화하거나 금리가 상승할 경우 국민연금의 상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국민연금의 불확실성 리스크가 그만큼 확대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연간 운용수익률은 8월 기준으로 8.22%에 달해 2022∼2024년 평균(6.98%)보다 1%포인트 이상 높은데 이러한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
금리 부담도 논란거리다. 미국 금리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발행이 이뤄질 경우 조달비용이 만만치 않다. 특히 달러 강세 국면이 겹치면 조달비 부담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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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에 빚을 지우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세계 주요 연기금 가운데에서도 드문 무부채 구조를 유지해왔는데, 외화채 발행은 그 상징적 성격을 흔드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정부 외환정책 때문에 연금이 동원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외환시장 관리 목적이 국민연금의 독립적 운용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며, 연금의 기금운용 독립성을 둘러싼 구조적 논쟁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환율 안정화 관점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기관인 만큼 의사 결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확장재정, 대미 투자 등으로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경제 환경에서 국민연금을 활용하더라도 원화 가치를 높일 수 있겠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외화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도 추진해야 한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연금사업에 필요한 기금을 ▷연금보험료 ▷기금 운용 수익금 ▷적립금 ▷공단의 수입지출 결산상의 잉여금 등 4가지 재원으로 조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 규정상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조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외화채권을 찍어내기 위해서는 국민연금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외화채 발행 관련 연구용역을 마치면 ‘환율 대응을 위한 4자 협의체’에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정부 입법 형태로 법 개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야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법 통과까지 지체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