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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열 가다듬은 삼성·SK·마이크론…차세대 HBM ‘삼국지’ [H200 中 수출 허용]

빗장 풀린 H200…한국에 호재
‘HBM 정상화’ 삼성, 메모리 개발 강화
SK하이닉스, 미국에 기술 조직 ‘초밀착’
‘성능 논란’ 마이크론 HBM 역량 집중

글로벌 반도체 3사가 인공지능(AI) 시장 최대 격전지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초점을 맞춘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2026년 AI 시장을 대비하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왼쪽)과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팹 M16(이천) 공장 전경 [삼성전자·SK하이닉스 제공]

미국이 8일(현지시간) 엔비디아 인공지능(AI) 칩 ‘H200’의 중국 수출을 허용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전 세계 반도체 업계와 AI 업계의 판도가 뒤흔들릴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H200에 HBM이 대거 들어간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는 일단 호재라는 평가다. H200칩의 중국 수출길이 열리면 일각에서 공급 과잉 우려가 제기됐던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HBM도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은 내년 AI 시장을 겨냥해 일제히 조직을 정비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최근 3사는 AI 메모리 시장의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HBM에 초점을 맞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SK하이닉스의 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차세대 HBM 경쟁에서 판도를 뒤집을 기회를 엿보고 있다. 엔비디아가 여전히 AI 메모리의 ‘큰손’으로 통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의 주문형 반도체(ASIC) 수요가 가세한 만큼 각 고객사들로부터 누가 얼마만큼 HBM 물량을 따낼 지가 관심사다.

▶HBM 수요 ‘폭발’…한국엔 호재 전망=미국의 엔비디아 ‘H200’ 칩의 중국 수출 허용은 엔비디아의 기존 독주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전망이다.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호재가 될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엔비디아의 최고사양 모델이었던 H200은 141GB 용량의 HBM3e(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를 탑재한 이른바 ‘메모리 먹는 하마’다.

특히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HBM 공급망 진입에도 청신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 기업이 생산한 HBM이 중국에 들어가게 되면 제재 대상 기업에서 사용되거나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않는지 등에 대한 관리 책임이 부과되는 등 숙제도 남아있다.

▶조직 떼거나 만들거나…목표는 모두 ‘HBM4 승부 대비’=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최근 메모리사업부 산하에 ‘메모리 개발 담당’을 새롭게 만들고 황상준 부사장을 수장으로 앉혔다. 기존의 D램개발실·플래시개발실·솔루션개발실을 모두 아우르며 메모리 사업 전반의 개발 업무를 유기적으로 관리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지난해 7월 비상조직 성격으로 만들어진 HBM개발팀은 D램개발실 산하 설계팀으로 흡수되며 사라졌다. 이는 최근 HBM 사업의 정상화에 따른 ‘비상상황 종료’로 해석된다. HBM3E의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으로 기술 결함 논란을 털어낸 만큼 이제 차세대 HBM 출시를 안정적으로 준비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엔비디아 공급망을 일찍이 선점한 SK하이닉스는 미국에 HBM 전담 기술 조직을 신설하기로 했다. 엔비디아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위치한 미국 현지에 AI 메모리 전진기지를 두고 파트너십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HBM 패키징 수율과 품질을 전담하는 조직도 구축해 개발-양산-품질 전 과정을 아우르는 HBM 특화 조직 체계를 완성했다. 미국의 자사 첫 생산기지인 인디애나 첨단 패키징 공장 구축 속도를 올리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글로벌 인프라’ 조직도 신설하며 AI 메모리 수요 대응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마이크론은 지난 3일(현지시간) PC·노트북에 들어가는 소비자용 메모리 사업에서 29년 만에 철수를 결정했다. AI 서비스 폭증으로 메모리 품귀 현상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소비자용 메모리보다 수익성이 높은 HBM 등 AI 메모리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내년 HBM 시장 키워드는 ‘맞춤형’·‘ASIC’=2026년 3사의 HBM 경쟁 주무기는 HBM3E에서 HBM4와 HBM4E로 옮겨간다. 엔비디아가 내년 하반기 출시를 예고한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에는 HBM4가, 2027년 출시하는 ‘루빈 울트라’에는 HBM4E가 탑재된다.

SK하이닉스가 지난 9월 HBM4 양산 체제를 구축한 데 이어 삼성전자도 최근 HBM4에 대한 내부 성능 평가를 완료하고 생산준비를 승인(PRA)했다. 이는 수율과 성능이 양산 기준을 충족했음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특별한 품질 이슈가 없어 연내 엔비디아의 인증 절차를 통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HBM4 개발에 10나노급 5세대(1b) 공정의 D램을 사용한 반면, 삼성전자는 기술 난도가 더 높은 10나노급 6세대(1c) 나노 D램을 기반으로 HBM4를 개발했다. 더 미세한 공정의 D램으로 성능 향상을 꾀했다.

지금까지 HBM 시장이 엔비디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구도였다면 구글·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가 자체 개발한 ASIC 시장의 성장은 HBM 고객 다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구글의 AI 가속기 ‘TPU 8세대’와 아마존의 ‘트레이니움 4세대’, 마이크로소프트의 ‘Maia 300’에는 HBM4가 탑재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HBM4의 가장 밑 부분인 베이스 다이(버퍼 다이)를 기존 D램 공정이 아닌 파운드리의 초미세 공정을 활용해 만든다. 지금의 D램 공정으로는 고객사의 요구를 맞추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의 초미세 로직 공정을 활용하면 각 고객사를 위한 맞춤 성능을 제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SK하이닉스가 세계 1위 파운드리인 TSMC와 손을 잡았다면 삼성전자는 자체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해 HBM4의 베이스 다이를 완성했다. 마이크론은 비용 절감을 위해 자사 D램 공정을 고수했으나 이 점이 커스텀 HBM 경쟁에서 밀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보다 한 발 늦은 HBM4E에서야 TSMC 역량을 활용하기로 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물량 싸움보다는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부터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이 시장 선점을 위한 최우선 포인트”라고 말했다. 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