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선상 제외됐다가 재수사로 기소
1심 무기징역→2심 무죄
2심 “족적 감정 결과 신뢰 떨어져”
1심 무기징역→2심 무죄
2심 “족적 감정 결과 신뢰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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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농민회 간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A씨. [유튜브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범행 현장에 남은 피 묻은 족적의 주인으로 지목돼 20년 만에 법정에 선 이른바 ‘영월 농민회 간사’ 살해 사건의 피고인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1심에선 무기징역이 선고됐지만 2심에 이어 대법원도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의 증명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살인 혐의를 받은 A(60·사건 당시 39)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2심) 판결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확정했다. 20년 전의 범행이라 물적 증거가 샌들 족적이 거의 유일한데 족적 분석 자체에 본질적인 한계가 있는 점 등이 고려됐다.
시간은 지난 2004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월읍 농민회 사무실에서 간사를 맡고있던 40대 남성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사 초기 A씨는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사건 발생 시각에 계곡에서 가족과 휴가를 보냈다며 알리바이를 댔다. 당시 촬영한 사진을 제출해 용의선상에서 제외됐다.
결국 이 사건은 장기미제로 남게 됐다. 이후 2014년 강원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은 재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A씨를 다시 수사망에 올렸다. 피해자가 피살된 곳에서 발견된 샌들 족적과 A씨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샌들의 특징점 17개가 99.9%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경찰은 2020년 11월 A씨를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3년 7개월 동안 보강조사를 거친 뒤 A씨를 재판에 넘겼다.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해당 샌들의 바닥 문양은 시중에 널리 판매된 양산제품의 특성상 흔히 발견되는 형태”라며 “샌들에서 피해자의 혈흔이나 유전자가 검출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족적 일치확률이 99.9%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신뢰성이 없다”며 “두 샌들의 족적이 동일한 정도에 대한 수치가 아니라 일단 일치한다고 전제한다음 우연히 일치할 조합을 계산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영월지원 형사1부(부장 이민형)는 지난 2월,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족적에 대한 과학적 수사를 통해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족적 일치확률에 대한 감정결과는 충분히 합리적이라 수긍할 수 있다”며 “샌들에서 특징점이 17개가 확인되는 경우는 지문 분석에서 23개 이상의 특징점이 확인되는 경우가 확률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는데 지문 분석에서 12개 이상의 특징점이 확인되는 경우 실무에서 동일 지문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제시한 알리바이에 대해서도 “디지털카메라 설정값 변경으로 촬영일시 조작이 가능하다”며 “ 범행시각 전후로 A씨가 계곡에서 벗어난 지역에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기지국 통신내역 등 객관적인 자료를 고려할 때 온전히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2심에선 무죄로 판단이 뒤집혔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부장 이은혜)는 지난 5월, 1심 판단을 뒤집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5번의 족적감정에서 ‘일치한다’는 결론은 3번 나왔지만 나머지 2번의 감정 결과에선 ‘동일성을 인정할 만한 개별적인 특징점이 없다’고 나왔다”며 족적 감정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이어 “이 사건은 장기 미제사건이 됐다가 2014년에 재수사가 진행됐지만 특별히 새로운 물적 증거나 간접증거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A씨를 혐의자로 특정한 것”이라며 “범행 이후 20년 이상이 지난 시점이라 직접증거를 새롭게 확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족적 감정은 감정인이 통상적인 오감을 통해 감정을 진행한다”며 “감정인의 숙련도나 감정 기간, 방법의 차이점 등을 고려해도 일관되게 같은 결과가 도출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2심 재판부는 “지문이나 DNA 등 다른 보강자료 없이 오로지 족적감정만 있는 상황에서 족적감정 결과만으로 A씨를 범인으로 판단하기엔 부족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 역시 원심(2심)과 같았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이번 사건에서 피고인 A씨를 대리한 이태훈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아직도 제가 영월교도소에 구속된 의뢰인을 처음 접견갔을 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변호사는 “당시 의뢰인은 저에게 ‘변호사님 저는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님이 제발 좀 도와주세요’라고 했고 저는 무고한 의뢰인을 조력해 누명을 벗겨야겠다는 일념으로 사건에 임했다”며 “그 결과 오늘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피고인의 누명이 벗겨졌다. 앞으로 형사보상청구 및 의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에 총력을 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