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프라 투자 급증 속 빅테크 채권발행 880억달러 급팽창
오라클·메타·코어위브 중심 신용헤지 수요 급증
“AI버블 붕괴 대비 보험 성격”…월가 위험 인식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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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시에서 2025년 12월 12일 금요일, 월가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거래소 바닥에서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미국 증시는 장 초반 이후 하락했으며 기술주도 함께 떨어졌다.[UPI]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월가가 인공지능(AI) 붐의 이면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술기업들의 부채가 빠르게 늘자, 투자자들이 채무 불이행 위험에 대비해 신용부도스왑(CDS)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불과 두 달 만에 CDS 거래량이 90% 급증하며 시장의 경계심이 수치로 드러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현지시간) 미국 예탁결제기관(DTCC)의 미국 기술기업을 기초자산으로 한 CDS 거래량이 9월 초 이후 약 90% 증가했다고 전했다. CDS는 기업이 채무 불이행에 빠질 경우 보상금을 지급받는 파생상품으로,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의 신용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이번 거래 급증은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대규모 차입에 나선 기술기업들을 둘러싼 불안 심리가 커졌음을 의미한다. 데이터센터, 고성능 반도체, 클라우드 설비 등 AI 투자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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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CDS 거래는 오라클과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CoreWeave)에서 두드러졌다. 두 기업 모두 AI 데이터센터 확보를 위해 수십억달러 규모의 부채를 조달하고 있다. 메타 역시 AI 프로젝트 자금 마련을 위해 30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이후 CDS 거래가 본격적으로 늘었다.
JP모건의 나다니엘 로젠바움 투자등급 신용전략가는 “이번 분기에는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을 중심으로 개별 기업 CDS 거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AI 인프라 확장 속도가 빨라질수록 신용 리스크를 헤지하려는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가을 메타, 아마존, 알파벳, 오라클 등 주요 기술기업들이 AI 프로젝트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채권 규모는 총 880억달러(약 130조원)에 달한다. JP모건은 투자등급 기업들이 2030년까지 AI 관련 투자 명목으로 최대 1조5000억달러를 조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연초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기술기업들은 풍부한 현금 흐름과 안정적인 실적을 바탕으로 AI 투자를 감당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투자등급 기업에 대한 CDS 수요는 거의 없거나 미미했다. 그러나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부채 시장에 뛰어들자, 투자자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한 글로벌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전에는 기술 대기업을 사실상 무위험 자산처럼 여겼지만, 이제는 기업별로 신용 위험의 크기를 따져봐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그 결과 CDS를 통한 헤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오라클의 경우 이러한 변화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사례다. 오라클은 투자등급 기업이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신용등급과 빠르게 늘어나는 부채로 인해 CDS 주간 거래량이 올해 들어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오라클 CDS를 매입하는 비용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최근 오라클 주가와 채권 가격은 3분기 매출이 시장 기대를 밑돌면서 급락했다. 여기에 일부 데이터센터 건설 일정이 연기됐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졌다. 자산운용사 알타나 웰스는 오라클의 부채 확대와 특정 고객, 특히 오픈AI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문제 삼아 CDS를 활용한 공매도 전략에 나섰다.
알타나 웰스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베네딕트 케임은 “오라클이 당장 채무 불이행에 빠질 가능성은 낮지만, 현재 CDS 가격은 리스크를 과소평가한 채 형성돼 있었다”며 “AI 투자 경쟁이 이어질수록 신용 위험은 다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월가에서는 CDS 거래 확대를 단순한 공포 신호로만 보지는 않는다. CDS는 채무 불이행에 대비한 보험 성격 외에도 채권 가격 변동에 대한 헤지나 시장 전망을 반영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즉, 투자자들이 AI 붐의 지속 가능성을 보다 냉정하게 점검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웰링턴 매니지먼트의 브리 쿠라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은행과 사모펀드들이 개별 기술기업에 대해 훨씬 더 큰 신용 노출을 안고 있다”며 “이들은 AI 투자 확대 국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CD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는 여전히 글로벌 증시의 핵심 성장 테마다. 하지만 월가는 이제 ‘성장 스토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수익이 가시화되기 전까지 버틸 수 있는 재무 구조인지, 부채 부담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가 투자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CDS 거래 급증을 AI 붐이 붕괴될 것이라는 예고라기보다는, 과열 국면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위험 관리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다만 AI 투자 경쟁이 장기화될수록 기업 간 옥석 가리기는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신용시장 전문가는 “AI는 분명 미래 산업의 핵심이지만, 모든 기업이 같은 속도로 수익을 창출할 수는 없다”며 “CDS 시장의 움직임은 투자자들이 이제 성장 서사보다 재무 현실을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