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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용전지 안전성 검사 한국만 ‘셀 단위’ 시장에선 “안전은 얻어도 산업은 잃는다”

검사·책임 단위 시장 친화적 재설계 필요성

지난 9월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5 이차전지 소재·부품 및 장비전에서 한 참가업체가 방전되거나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기술을 홍보하고 있다. [연합]

국내 사용후(폐)배터리 재사용 시장이 성장도 못해보고 사양길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은 성장하는데 규제가 이를 막다보니 경제성은 낮아지고 초기에 뛰어들었던 사업자들마저 고개를 내저으며 돌아선다는 설명이다.

특히 안전 검증이 대표적 ‘장애 규제’인데, 셀단위 전수조사가 한국은 기본이다. 데이터 조사와 모듈 단위 조사를 하는 해외와 비교하면, 쇠스랑을 차고 빨리달리기 대회에 나간셈이라는 푸념도 나온다.

16일 배터리 재사용 업계에 따르면 폐배터리는 최소 단위인 ‘셀(cell)’ 여러 개를 묶은 ‘모듈(module)’, 이를 다시 조합해 외함과 관리시스템을 결합한 ‘팩(pack)’ 구조로 구성되는데, 국내 제도는 이 가운데 가장 작은 셀 단위까지 검사·관리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핵심은 ‘재사용전지 안전성 검사제도’다. 제도는 지난 2023년 10월 19일부터 시행됐고, 안전 요구사항을 담은 기준이 ‘KC 10031’이다. 사용후전지를 재사용하기 위한 전지모듈을 배터리 팩·모듈·셀·셀 블록까지 폭넓게 포괄하고, 재조립한 재사용 전지시스템까지 검사 범위에 포함한다.

문제는 이 구조가 현장에선 ‘셀(또는 셀 블록)까지 내려가는’ 운영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분해 과정에서 팩 일련번호와 분해한 모듈·셀 그리고 셀 블록의 일련번호가 연계돼야 하는 등 추적관리 의무가 강하게 요구되면서 공정·설비·인력 비용이 급증한다. 업계에선 “안전성 확보를 위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한국은 인증·검사 체계가 지나치게 미시 단위로 설계돼 재사용 비즈니스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온다.

해외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미국은 재사용 배터리 자체의 선별·등급화 공정은 ‘UL 1974’ 등 표준을 통해 관리하고, 실제 설치되는 ESS는 ‘UL 9540’ ‘UL 9540A’ 등 시스템 단위의 안전성과 화재 확산 위험 평가를 중심으로 건축·소방 기준과 연계한다. 설비(공정) 인증과 시스템 인증을 분리해 위험을 관리하는 구조다.

유럽 역시 배터리 규제는 강화하되 시장 작동을 전제로 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EU는 2023/1542 규정을 통해 배터리 안전·성능·내구성 기준을 제도화하면서도, 셀 단위보다는 시스템·용도 중심의 관리 체계를 병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럽은 규제가 강해도 사업 모델이 돌아갈 여지를 남긴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안전은 강화하되 검사 단위와 책임 단위를 시장 친화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팩·모듈·셀의 역할을 구분해 위험 기반으로 검사 수준을 차등화하고, 재사용 등급과 설치 환경에 따라 시스템 단위 검증과 현장 안전 기준을 결합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한국만 셀 단위에 머무르면, 안전은 얻을 수 있어도 산업은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홍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