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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내연차 퇴출’ 철회…글로벌 車업계 “실용적, 타당한 조치”

中전기차 공세에 EU 내연차 금지철회
탄소배출감축량 목표 100→90% 완화
수익성 악화 유럽 車업체 압박에 굴복
독일車 3사 3분기 수익 ‘4분의1 토막’

독일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이 츠비카우에 있는 공장에서 ID.3 전기차를 만들고 있다. 유럽연합은 오는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을 퇴출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게티이미지]

유럽연합(EU)이 오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려던 계획을 사실상 철회한 것과 관련해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역내 자동차 업계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U 집행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2035년 신차 탄소 배출 감축량을 당초 목표인 100%가 아닌 90%로 낮추도록 완화하는 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신차 탄소 배출 감축량이 100%라는 것은 2035년부터는 전기차 판매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탄소 배출 감축량 목표를 100%에서 90%로 완화한다는 것은 2035년에도 디젤차 등 일부 내연기관 차량이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까지 판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차량 제조사들은 저탄소 방식으로 생산된 유럽산 철강을 사용하고, 친환경 연료를 써 차량을 생산하는 등의 방식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스테판 세주르네 EU 산업 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EU 집행위원회는 실용적이면서도 기후 목표에는 일치하는 접근법을 선택했다”며 EU의 친환경 목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2035년 내연차량 판매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기존의 안은 지난 2023년 채택됐다. 당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의 중대 성과이자 전기차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평가받았으나, 유럽 내 자동차 업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자동차를 주력 산업으로 하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은 특히 중국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 등을 들어 이에 반발해왔다.

유럽의 ‘전기차 전환 드라이브’는 중국 기업의 잔칫상이 됐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 컨설팅회사인 알릭스파트너스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승용차 수출은 전년보다 23% 급증한 640만대로 집계됐다. 알릭스파트너스는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시장의 30%를 점유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급성장은 전기차가 견인했다. 유럽의 배터리 전기차(BEV) 시장에서 중국 점유율은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10%였다. EU는 중국에서 생산된 배터리 전기차에 대해 최대 45.3%의 관세를 매겼지만, 중국 업체들이 관세를 피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PHEV) 부문에서 크게 성장하는 ‘역효과’를 냈다. 오히려 중국에서 배터리 전기차를 만들어 유럽으로 들여오는 BMW가 30%의 관세를 부과받는 등 ‘자충수’가 됐다.

유럽의 자동차 업체들은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차와의 경쟁 뿐 아니라 전기차 투자 비용까지 감당하느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독일 자동차 업계는 영업이익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컨설팅업체 EY가 전세계 19개 완성차 업체 재무자료를 분석한 결과, 폭스바겐과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3사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합계 17억유로(약 2조9500억원)로 2009년 3분기 이후 가장 적었다.

독일 3사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하면 75.7%나 급감했다. 영업이익이 1년새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다른 국가의 자동차 업체들도 불황의 여파를 맞았지만, 감소 폭이 독일 업체들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일본 차 업체들의 영업이익은 29.3%, 미국과 중국 업체들은 각각 13.7%가 줄었다.

EY는 독일 산업의 주력인 자동차 업계의 부진에 대해 고급차 라인업이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 미국 관세정책의 영향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부정적 환율 효과와 전기차 투자비용, 구조조정 비용 등이 부진의 원인으로 꼽혔다.

독일 자동차 업계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특히 고전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 기업들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20년 3분기 39.4%였던 것이 올해 3분기 28.9%로 줄었다. 이는 2012년 이후 최저치다. 폭스바겐 산하의 고가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는 중국 내 대리점을 144곳에서 80곳으로 줄였다. 중국은 내수 부진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데다 자국의 자동차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제 살 깎아먹기’식 저가 경쟁까지 벌여, 독일산 고급차의 입지가 급격히 줄었다.

이에 독일 차 업체들은 대대적 구조조정과 함께 내연차 라인업을 강화하며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췄다. 독일에서는 벤츠 등 자동차 업체의 최고경영자(CEO)부터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까지 나서 2035년 내연차 퇴출이란 강경책을 보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EY의 자동차 전문가 콘스탄틴 갈은 “전기차가 빠르게 성장할 거라는 기대는 거의 실현되지 않았고, 최소한 서구 시장에서는 판매량이 조금만 증가하고 있다”며 독일 자동차 업체들이 내연기관으로 돌아선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업계의 압박에 EU가 한 발 물러섰다. 2035년 내연차 퇴출 목표를 보류한 것을 두고 유럽 최대 자동차 제작사인 폭스바겐은 “실용적이고, 경제적으로 타당한 조치”라고 반겼다고 AFP는 보도했다. EU에 내연차 퇴출 계획 철회를 요청해온 메르츠 독일 총리도 “기술에 대한 개방성, 더 큰 유연성을 허용하는 올바른 조치”라고 환영했다.

반면, 환경단체 등은 최근 성장 둔화를 우려하며 기후 위기 대응에서 기존 입장을 번복해온 EU가 또 다시 산업계 요구에 굴복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린피스 독일의 마르틴 카이저 사무총장은 “이번 후퇴는 일자리, 대기 질, 기후 모두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저렴한 전기차 공급도 늦출 것”이라고 비판했다.

스페인, 북유럽 국가들 역시 내연차량 금지에서 물러서는 것은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고 투자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EU의 결정을 비판했다. 스페인은 폭스바겐그룹이 친환경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 등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던 곳이다.

한편, AFP는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유럽에서 판매된 신차 중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비중은 16%를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