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벤시 UK’ 벤치마킹…내년 상반기 전담 TF 가동
엄격한 요건 탓 활용 ‘전무’…문턱 낮춰 자금 물꼬
자본 부담 줄이고, 인센티브… 실물경제 투자 유도
‘중도해지 제한·고금리’ 새 연금보험 등장 가능성
엄격한 요건 탓 활용 ‘전무’…문턱 낮춰 자금 물꼬
자본 부담 줄이고, 인센티브… 실물경제 투자 유도
‘중도해지 제한·고금리’ 새 연금보험 등장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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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당국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던 ‘매칭조정’ 제도를 영국식으로 대수술해 보험사의 자본 족쇄를 푼다. 확보된 여력을 AI·데이터센터 등 ‘생산적 금융’으로 유도해 실물경제를 지원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익률을 높인 신개념 연금 상품이 새롭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금융당국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던 보험업권의 ‘매칭조정(Matching Adjustment·MA)’ 제도를 영국식 모델로 전면 개편한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자국 보험사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규제를 푼 ‘솔벤시(Solvency) UK’ 모델을 도입했다.
당국은 이를 통해 보험사의 자본 족쇄를 풀어주고, 여기서 확보된 자금 여력을 인공지능(AI)이나 데이터센터 등으로 투자하는 등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으로 유도하겠다는 복안이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생산적 금융 TF(태스크포스)’에서 영국식 매칭조정 규제 완화 사례를 도입하기 위한 기초 검토를 진행 중이다. 내년 초 기초 검토를 마친 뒤에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해 상반기 중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별도 TF를 꾸려 본격적인 제도 개선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내년도 금융당국이 추진할 생산적 금융 전환을 위한 규제 개혁의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현재 인프라 자산 등 현금흐름이 긴 자산까지 매칭조정 대상으로 폭넓게 인정할 수 있을지 살피고 있다”면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실제 투자는 보험사들이 리스크와 수익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의 자금이 자연스럽게 생산적 금융으로 흘러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할인율 높여 자본 확충”…현실은 ‘그림의 떡’
매칭조정은 현행 보험업 감독규정에 명시된 제도다. 매칭조정이란 보험사가 보유한 자산과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부채(보험금)의 현금흐름이 일치(매칭)할 경우, 부채를 평가할 때 일종의 보너스 금리(가산 금리)를 얹어주는 제도다.
보험사는 미래에 줄 돈(부채)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쌓아둬야 하는데, 이때 적용하는 할인율이 높을수록 부채 규모는 줄어든다. 즉, 매칭조정을 적용받으면 부채가 줄어들고, 그만큼 자본 여력이 늘어나는 효과를 본다. 자본이 넉넉해지면 보험사는 굳이 수익성이 낮은 안전자산만 고집할 필요 없이 다양한 투자처를 모색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적용 조건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현행 보험업 감독규정은 자산과 부채의 현금흐름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해야만 매칭조정을 인정해 준다. 보험사가 투자한 자산에서 들어오는 이자 수익의 시기·금액이, 고객에게 나가는 보험금과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 규정상 매칭조정 관련 내용은 단 한 페이지에 불과하고, 구체적인 실무 가이드라인도 없다”면서 “규정도 빡빡한 탓에 현재 국내 보험사 중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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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 쏠림·시장 왜곡…英 모델서 해법 찾다
금융당국이 뒤늦게 ‘죽은 제도’ 살리기에 나선 것은 이런 경직된 규제가 자금 흐름을 왜곡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 계획을 밝히는 등 1145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운용하는 보험업계에서도 실물경제에 혈맥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보험사들은 새롭게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체제에서 건전성 지표 방어에 급급한 실정이다. 자산과 부채의 만기를 인위적으로 맞추기 위해 가장 안전하고 관리가 쉬운 초장기 국고채 매입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주목한 모델이 바로 영국의 솔벤시 UK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EU)의 보수적인 규제를 걷어내고 자국 상황에 맞춰 ‘매칭조정’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핵심은 유연성에 있다. 100% 완벽한 현금흐름 매칭이 아니더라도, 인프라 프로젝트 등 현금흐름이 길고 안정적인 자산을 매칭조정 대상에 폭넓게 인정해 준 것이다. 규제 빗장이 풀리자 보험사들은 향후 10년간 약 1000억 파운드(약 197조원)를 생산적 금융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 교통 인프라와 친환경 에너지 사업 등에 자금이 돌기 시작했다.
다만 영국과 한국의 시장 상황이 다른 만큼, 한국에 적합한 제도 모형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IFRS17을 같이 적용하고 있는 영국 생명보험 시장은 연금상품이 수입보험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달한다. 한번 가입하면 해지가 어려운 연금보험은 현금흐름이 고정적이라 매칭조정을 적용하기 유리한 구조다. 반면 한국은 언제든 깰 수 있는(중도 해지) 저축성 보험이나 보장성 보험 비중이 높아 현금흐름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 선택권 넓힐 ‘한국형 모델’ 고민 중”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영국 제도를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국내 보험 환경에 맞는 현실적인 적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기존의 해약 환급형 상품에 무리하게 제도를 적용하는 것 대신, 현금흐름 예측이 가능한 별도의 상품군을 유도하거나 이에 맞는 완화된 기준을 신설하는 방식이 예상된다.
제도 개선이 가시화될 경우 시장과 소비자의 선택권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보험사는 매칭조정 적용을 통해 확보한 자본 여력으로 국고채 대신 수익률이 높은 인프라 자산 등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수 있게 된다. 정부에서는 AI·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필요한 대규모 장기 자금을 보험사로부터 조달받는 ‘윈윈(Win-win)’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연금 상품을 접할 가능성이 있다. 업계에서는 중도 해지가 제한되거나 페널티가 강화되는 대신, 시중 금리보다 높은 이율을 제공하는 상품이 출시될 가능성을 언급한다. 보험사가 매칭조정으로 절감한 자본 비용과 투자 수익을 가입자에게 금리 혜택으로 돌려주는 구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매칭조정 활성화 시 자산과 부채의 현금흐름을 일치시키기 위해 중도 해지 제한 등을 둔 단순한 구조의 상품 개발이 가능해진다”며 “해외 사례처럼 노후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등 기존 시장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연금 상품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