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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달러 환율이 1480원을 넘은 1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외환 당국은 최근 국민연금과 맺은 외환스와프를 실제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 |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육박했다. 외환 위기급이다. 체력이 좋은 대기업들은 버틴다. 찬바람은 중소기업부터 덮친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기업들이 1차 충격 대상이다. 수출 비중이라도 크면 다행이다. 최악은 비싼 달러로 원재료 조달비를 결제하고, 제품 판매는 원화로 받는 내수 업종들이다. 페인트·제지·섬유·플라스틱 가공 업체들이 그들이다. 중기 대상 최근조사에선 내년 경영 어려움 전망 원인 1위가 고환율이었다.
18일 국내 한 페인트 업계관계자는 “고환율 상황이 수개월째 지속되면서 원자재 가격 인상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페인트 원료 재고가 6개월 정도 비축돼 있긴 하지만 고환율이 계속되면 결국 원자재비 상승분이 이익률을 낮추게 될 것”이라며 “페인트 업계는 대부분 국내 건설사들에 B2B 형태로 납품이 되는데, 원자재 가격이 높아진다고 해서 바로 이를 납품가에 반영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페인트 업계관계자도 “환율 부담이 커지고 있다. 업계 공통이다. 제품 원가가 올라가면 납품가격도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수출이라도 많으면 달러로 결제를 받기 때문에 고환율 부분이 상쇄가 되겠지만 페인트업계 대부분은 내수다. 고환율 상황이 유지된다면 이익률은 더 나빠질 것이고, 결국 손해보면서라도 거래선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제지업계 역시 고환율 충격을 고스란히 받는 대표 업종이다. 다만 원자재 조달 경로를 다변화 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희비는 갈린다. A제지사는 펄프 조달 경로를 국내 40%, 수입 60% 수준으로 유지해왔고, 수출 비중도 꽤 크다. 고환율 충격을 상쇄할 여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A제지사 관계자는 “한국에서 칩 등 형태로 조달되는 나무의 양이 있어 직접 타격은 피할 수 있다. 또 수출 비중도 크기 때문에 고환율을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아직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A제지사 같은 사례는 ‘예외’에 가깝다. 대다수 제지사는 펄프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인 탓에 환율 상승이 곧바로 원가 부담으로 연결된다. 실제로 B제지사는 공시된 사업보고서에서 “펄프는 국내 자원의 공급기반이 취약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업계에선 현재와 같은 고환율 상황이 지속되면 원가 상승분을 제품가격에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는지가 내년 실적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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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기중앙회가 중소기업을 대상은 2026년 기업들이 우려하는 경영 애로 사항을 묻는 질문에 1위가 고환율 등이라고 답했다. [중기중앙회] |
고환율은 중기 업계의 내년 최대 경영 리스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7일 공개한 ‘중소기업계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0.7%가 내년도 가장 우려되는 경영 애로사항(2개 응답)으로 ‘고환율 등 원자재·물류비 부담’을 꼽았다. 이어 ‘인건비 상승’(40.0%), ‘인력난 확대’(30.4%)가 뒤를 이었다. 내년 한국경제 최대 위기 요인으로는 ‘저성장 고착화’(26.7%)가 가장 많이 지목됐고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위기’(24.1%) 등이었다. 고환율과 저성장에 고물가까지 겹치는 3중고가 내년 중기 경영 전망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고환율 취약 업종은 페인트·제지에만 그치지 않는다. 업계에선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원재료 수입형 제조업’이 일제히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합성수지·첨가제 등 수입 원료를 쓰는 플라스틱 가공(필름·포장재·사출) 업종은 원화가치 하락(고환율)에 따른 영향을 직접 받는다. 원단·염료·화학약품 의존도가 큰 섬유·염색가공 업종도 환율이 오르면 원가가 급등하지만, 내수 브랜드 또는 하청 구조 때문에 판매가 전가눈 쉽지 않다. 잉크·용지·코팅재 그리고 인쇄·패키징 업종 역시 고환율 리스크에 노출되기 쉬운 업종이다.
식품 제조업 가운데서도 원재료를 해외에 의존하는 업체들은 ‘고환율+고물가’의 이중 부담을 호소한다. 원두·코코아·향신료·견과류·곡물 등 수입 원재료 비중이 높은 가공식품·제과·카페 원부자재 업종은 환율 상승분이 원가로 반영되는 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판매가 인상은 곧바로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마진을 깎아가며 버티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것이 현장 목소리다.
정부도 고환율 상황 지속이 경제 부담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응 수위를 높였다. 정부는 휴일인 지난 14일 관계기관 합동 점검 회의를 소집, 외환·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부는 수출기업의 달러 보유·환전 유보 실태를 점검하고, 증권사 등 금융회사의 외환 송금·관리 실태를 들여다보는 한편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전략과 달러 수급 구조도 함께 점검했다. 시장에 즉각적인 안정 신호가 확인될 때까지 관계기관 합동 대응을 이어가며 추가 대책도 검토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고환율·저성장·고물가’ 기조가 동시에 작동할 경우, 중소기업의 체감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고 본다. 원가가 오르더라도 납품가 전가가 쉽지 않은 B2B 업종, 내수 의존도가 높아 환율 상쇄 수단이 부족한 업종, 금융비용 부담이 커진 업종일수록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소기업계는 환율·원자재 수급 안정화와 함께, 납품단가 조정 여건 개선, 물류비 부담 완화, 자금·세제 지원 등 ‘현장 체감’ 중심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