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병원 ‘솔솔바람’ 1호 작가 정서윤양
피아노 영재 꿈꾸다 미술재능 꽃피워
동생·엄마한테 조혈모세포이식 받아
피아노 영재 꿈꾸다 미술재능 꽃피워
동생·엄마한테 조혈모세포이식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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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윤 양이 어머니와 함께 퇴원 후 환히 웃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
“퇴원 후 맞은 바람은 기적 같은 일상이었어요.”
급성 백혈병과 심장병으로 병원 생활을 이어가던 10대 소녀. 마침내 병마를 이겨내고 퇴원하던 날, 오랜만에 맞은 바깥 ‘바람’의 느낌을 소녀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오랜 투병으로 바람에 흩날릴 머리카락은 몇 줌 남아있지 않았지만, 바람은 머리카락 대신 마음에 불었다. 그 기적 같은 ‘감각’은 고스란히 화폭으로 옮겨졌다.
급성 백혈병과 심장병을 이겨내고 예술가로 성장한 정서윤(현재 15세)양의 사연이 화제다. 5년간 투병 생활을 마치고, 부산에 미술 활동을 전문적으로 펼칠 수 있는 공방을 열었다.
19일 서울성모병원은 ‘솔솔바람 1호 작가’ 정 양의 성탄 소식을 전했다. 솔솔바람은 서울성모병원이 중증질환 환아와 가족을 위해 통합 돌봄을 제공하는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이다.
서울성모병원과 정 양의 인연은 지난 2021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 소아 혈액질환이 의심됐던 정 양은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후,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았다.
정 양의 병원 생활은 혹독했다. 당시는 코로나19로 면회가 제한된 시기. 정 양의 엄마는 딸의 곁을 지키지 못한 채 병실 밖에서 애만 태워야 했다. 고용량 항암제 치료 후에는 6살 때 진단받았던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PSVT)이 악화해 심장 시술까지 받았다. 첫 번째 조혈모세포이식 이후, 2023년에는 재발 소식까지 불운이 겹쳤다.
정 양을 지탱한 것은 가족이었다. 지난 2022년 체중 30㎏도 채 되지 않았던 정 양의 동생은 5시간에 걸친 조혈모세포 기증을 견뎠다. 2023년 재발 당시에는 엄마가 나섰다. 가족들은 정 양이 동생으로부터 이식받은 날을 ‘남매의 날’로, 엄마로부터 두 번째 이식을 받은 날을 ‘모녀의 날’이라 불렀다.
가족의 헌신은 정 양이 예술가로서 첫발을 뗄 수 있었던 이유였다. 힘겨운 조혈모세포이식 과정과 긴 회복기를 겪으면서도 정 양은 아크릴판 위에 가족, 의료진, 자신과 함께 병동에서 지내는 환아들을 그렸다.
한번 입원하면 적어도 한두 달은 병원에 있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정 양의 그림은 특별한 선물이 됐다. 정 양은 미취학 환아에게 본인이 좋아하는 로봇과 공룡을, 청소년 환아에게 자신을 닮은 수채화 그림을 선물했다. 어느새 병동 아이들의 수액 폴대에는 좋아하는 그림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그렇게 정 양은 병동 곳곳에 작은 행복을 전했다. 현재 정 양은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치료 과정에서 만든 작품과 웹툰, 병동에서 그린 작품들은 미술 공방에 전시했다.
정 양의 주치의 조빈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서윤이가 이제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을 열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다”며 “앞으로도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건강하게 꿈을 넓혀가길 의료진 모두가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솔솔바람 전문간호사 최선희 부장은 “백혈병 치료 과정에서 감염 위험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미술도구가 제한적이었지만, 서윤이는 주어진 것만으로도 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림을 꾸준히 그렸다”며 응원했다.
예술가로 첫발을 뗀 15세 소녀는 투병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전했다. 병원 안에서 희망을 말하던 정 양은 이제 세상에 행복을 이야기할 계획이다.
“몸이 아파도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구나, 그런 순간을 꼭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그림을 통해 제가 느낀 작은 행복을 전하고 싶어요.” 고재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