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만에 사과·보상안 내놓은 쿠팡
‘잘못·책임’ 표현 최소화, 美 소송 의식 관측
김범석·핵심증인 불참…‘자체조사’ 도마에
정치권, 국정조사·입국금지 카드까지 거론
‘잘못·책임’ 표현 최소화, 美 소송 의식 관측
김범석·핵심증인 불참…‘자체조사’ 도마에
정치권, 국정조사·입국금지 카드까지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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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서울 강남구 쿠팡CLS 본사 앞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쿠팡의 과로방지 사회적 합의 미이행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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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한 달 만에 김범석 의장의 사과와 자체 보상안이 나왔지만, 청문회 출석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이란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김 의장이 또다시 국회 연석 청문회에 불참을 통보하면서 ‘맹탕 청문회’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 달 만의 사과문, ‘잘못’은 빠졌다…왜?=김범석 의장은 사태 한 달여 만인 지난 28일 “쿠팡에서 일어난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고객과 국민들께 매우 큰 걱정과 불편을 끼쳐드렸다”며 서면 사과문을 내놨다. 사과문에는 ‘사과’라는 단어가 8개 등장한다. 사태에 대해 사과한다는 맥락에서 절반이 쓰였고, 나머지는 사과가 늦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됐다.
‘잘못’은 한 번만 언급됐다. 이번 사태가 쿠팡의 잘못이란 표현은 아니었다. 모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게 공개적 사과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사용됐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실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각종 의혹에는 “오정보가 난무한다”고 일축했다. ‘책임’이란 단어는 3차례 썼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을 명시하는 표현은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이라는 문구에만 들어갔다. 나머지는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식으로 썼다.
사과문에 밝힌 사건 진행 경과도 쿠팡이 지난 25·26일에 낸 입장문처럼 실제 유출된 고객 정보가 3000개로 제한됐으며, 이를 정부와 협력해 100% 회수했다는 방어적인 내용이다. 용의자가 퇴사 후에도 수개월간 쿠팡 서버에 접속해 개인정보를 빼낼 수 있었던 배경과 그 책임에 대한 내용은 빠졌다. 다만 “보안 허점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보안 시스템을 혁신하겠다”는 다짐은 밝혔다.
업계에서는 김 의장의 이번 서면 사과문이나 정부 지시·협조에 따라 조사를 진행했다는 입장문이 미국 현지 소송을 의식한 것 아니겠냐는 뒷말이 나온다. 쿠팡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것처럼 비쳐 법정에서 불리해질까 자체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는 추측이다. 미국 상장사인 쿠팡Inc의 현지 주주들은 쿠팡의 ‘보안 실패’를 근거로 집단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미국에선 배상액이 천문학적 규모로 커질 수 있다.
1인당 배상액도 10만~20만원 수준인 국내보다 비싸다. 미국 통신사 T모바일은 지난 2021년 7660만명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1인당 최대 2만5000달러(약 3600만원)을 보상했다. 지난해 AT&T가 지급한 보상액은 1인당 최대 7500달러(약 1100만원)였다. 소비자 대상 손해배상소송을 겪어본 한 기업 관계자는 “미국 소송 규모가 국내보다 훨씬 커질 수 있어 표현을 하나하나 신경을 쓴 것 같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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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주차된 쿠팡 배송 차량. [연합] |
▶김범석 빠진 청문회 또 ‘맹탕’ 불보듯=김 의장은 30~31일 열리는 국회 연석 청문회에 또 불출석한다. 김 의장은 국회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에서 “본인은 현재 해외 거주 중으로, 12월 30일과 31일에 기존 예정된 일정으로 인한 부득이한 사유로 청문회 출석이 어려움을 알려드린다”며 “해당 일정은 확정돼 변경이 어려워 청문회 출석이 불가함을 양해해 달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번 청문회에는 김 의장의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과 강한승 전 대표 등 핵심 증인들도 참석하지 않는다. 대신 지난 17일 청문회에서 무성의하다는 비판을 받은 해롤드 로저스 신임 대표와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브랫 매티스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 김명규 쿠팡이츠서비스 대표, 이영목 쿠팡 부사장 등이 출석할 예정이다.
청문회에선 쿠팡의 ‘자체 조사’와 ‘5만원 보상안’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쿠팡은 유출자에 대한 조사가 정부의 지시·협의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정부는 그런 적이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김 의장의 ‘패싱’에 반발해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민의힘도 국정조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었던 만큼, 여야 이견 없이 국정조사가 추진될 수 있다. 헌법에 근거해 열리는 국정조사는 범위와 강제력에서 청문회보다 수위가 높다. 2014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 때 국정조사가 열린 바 있다.
김 의장에 대해 입국 금지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6일 정당한 이유 없이 국회 증인으로 불출석한 경우 입국을 금지하는 이른바 ‘김범석 입국금지법’을 발의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외국인이 경제·사회에 해악을 끼칠 우려가 있을 때 유승준 사례처럼 입국 금지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승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