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후부 장관이 쏘아올린 두 개의 공 [이슈&뷰]

김성환 장관, 수도권 전력난 이유로
용인반도체단지 지방 이전 언급
신규 원전건설도 원점 재검토키로


정치인 출신인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수도권 전력난을 이유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이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중장기 투자 계획을 전제로 움직여온 반도체업계가 불확실성에 휩싸이고 있다. ▶관련기사 4면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세계 주요국이 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 경쟁에 나선 상황에서 김 장관의 발언은 정책 신호 측면에서 가볍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장관은 올해 2월 확정된 신규 대형 원전 2기 건설도 국민 토론회와 여론조사를 거쳐 다시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미 정책 결정이 내려진 사안을 다시 공론화에 붙이면서 정부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반도체 산업과 전력 공급 정책은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사안이다. 결국 김 장관의 발언은 한국 경제 성장을 떠받치는 두 축인 반도체와 전력 정책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전날 올해 우리 수출액이 사상 첫 7000억달러를 돌파한 기록을 세운 주인공은 반도체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월보다 38.6% 증가하면서 172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체 수출의 28.1%다. 이런 상황에서 김성환 장관은 지난 26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시에 입주하면 두 기업이 쓸 전기의 총량이 원전 15기 분량이어서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고민된다)”라며 “최대한 에너지가 생산되는 곳에 기업이 가고 꼭 불가피한 것만 송전망을 통해 송전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할 텐데 걱정된다”고 밝혔다.

앞서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기가 넘쳐 흐르는 새만금으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이전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것과 비슷한 맥락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다만 기후부는 김 장관의 발언을 두고 “원론적인 입장에서 우려를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제조시설(팹)을 비수도권에 짓는 것이 정치권 주장만큼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결과적으로 우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잃게 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수도권에 대규모 전력 공급이 어려우니, 신재생 전력 생산이 많거나 생산이 늘어날 곳으로 반도체 공장을 옮기자는 이런 주장들이 인허가 문제 등으로 이미 크게 늦어진 용인 반도체 산단의 완공을 더 늦추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나온다.

2023년 계획이 확정된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국가 산단은 3년이 다 된 최근에야 토지보상 절차를 시작했고, 2019년 계획이 발표된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는 6년이 지난 올해 2월에야 착공했다. 계획 발표 후 28개월 만에 완공된 일본 구마모토의 TSMC 파운드리 공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린 속도다.

수년에 걸쳐 정부·지방자치단체와 전력·용수 문제를 간신히 풀고, 본격적으로 수백조 원대 투자를 진행하려는 기업들로선 김 장관의 발언이 난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수도권은 국내 최대 전력 소비처로 기존 송전·변전소 인프라스트럭처가 전국에서 가장 촘촘하게 구축돼 있어 전력 품질 유지에 강점이 있다. 수도권은 한강이라는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시설 운영에 유리한 부분이 많다.

또한 김 장관은 취임 이후 “2차례 정책토론회와 여론조사를 거쳐 신규원전 건설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정책토론회의 시작은 올해 2월 확정된 제11차 전기본에 명시된 신규원전 건설을 재검토하는 수순이다. 전기본은 법적 절차에 따라 2년마다 수립하는 15년짜리 중장기 계획이다. 확정 당시엔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찬성했다. 정책 일관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도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원전에 왜 내 편 네 편을 가르냐”며 갑갑함을 토로했다.

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