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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97원’ 역대 최고치 갈아치운 연평균 환율

외환위기·금융위기 수준 모두 뛰어넘어
마지막 거래일 ‘역대 3위’ 1439원 마감
올해 3개 분기가 평균 1400원 웃돌아
거래일 사흘 중 하루는 1450원 넘어

 
올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1421.97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수준을 모두 뛰어 넘었다. 분기별로는 3개 분기의 평균 환율이 1400원을 웃돌았다. 사진은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한 직원이 달러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헤럴드DB]

 

올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수준을 모두 뛰어 넘었다. 분기별로는 3개 분기의 평균 환율이 1400원을 웃돌았다. 한 해 세 차례 분기별 평균 환율이 1400원선을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31일 한국은행·서울외국환중개 등에 따르면, 올해 원/달러 평균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1421.97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평균치(1394.97원)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276.35원)보다 높은 수치다.

연말 종가도 역대 3위를 기록했다. 전날 원/달러 환율은 주간 종가 기준 전 거래일 대비 9.2원 오른 1439.0원에 올해 마지막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인 1695.0원에 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여파를 맞은 지난해 1472.5원에 이은 기록이다.

올해 분기별 평균 환율은 세 차례나 1400원을 넘겼다. ▷1분기(1452.91원) ▷2분기(1401.39원) ▷3분기(1386.13원) ▷4분기(1451.96원) 순으로 기록했다.

올해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웃돈 날은 전체 242거래일 중 77일에 달한다. 3일에 한 번은 1450원을 넘어선 셈이다.

올해 원/달러 환율은 비상계엄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맞물린 관세 전쟁 여파까지 겹치며 상반기 내내 고환율 흐름을 이어갔다. 이후 6월 조기 대선 국면에 접어들며 경기 회복 기대가 살아나자 환율은 점차 안정세를 보였고 6월 말 1347.1원까지 내려오며 연중 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환율은 6월 말 저점을 찍은 이후 다시 상승 전환해 꾸준히 올랐다. 한·미 관세 협상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통화스와프 등 대외 금융 협력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이어졌고 미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면서 달러화 강세가 뚜렷해진 영향이다. 여기에 연말로 갈수록 해외 증권투자가 확대되며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이 늘어난 데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순매도세가 이어진 점도 환율 상승 압력을 키웠다.

4분기 들어서는 1400원 밑으로 내린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이달 들어선 지난 24일 장중 최고점인 1484.9원까지 찍었다. 이달 15일부터 원화 환율 급락세에 1470원대를 돌파하면서 시장 우려를 키웠지만 외환당국의 구두 개입으로 4분기 평균 환율은 1450원을 웃도는 수준에서 진화할 수 있었다. 외환당국과 국민연금 간 외환스와프 계약 기간을 1년 연장하는 한편 실제 가동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환율 장기화에 가계와 기업이 느끼는 부담도 커졌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12월 기업경기조사 결과 및 경제심리지수(ESI)’에 따르면 제조업체들은 경영애로 사항으로 내수부진(25.9%)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뒤로 불확실한 경제상황(17.3%), 환율(9.3%) 등 순이었다. 특히 환율의 비중은 전월보다 1.8%포인트 오르며 지난 1월(9.9%)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컸다.

소비 심리도 더욱 위축되고 있다. 한은이 발표한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9.9로 전월 대비 2.5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비상계엄이 있던 지난해 12월(-12.3포인트) 이후 최대 낙폭이다. 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배제할 경우 지난해 8월 2.9포인트 하락 후 가장 많이 떨어진 수치다.

향후경기전망CSI는 환율 변동성 확대와 AI(인공지능) 산업 재평가 가능성 등 대외환경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에 6포인트 떨어져 96로 집계됐다. 지금의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현재 경기판단 CSI’도 6포인트 하락한 89를 기록했다. 이 역시 계엄 사태(작년 12월 -18포인트)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향후 1년 물가 수준을 전망하는 ‘물가수준전망 CSI’가 148로 전월보다 2포인트 상승했다.

실제 고환율은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12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3% 올랐다. 지난 11월(2.4%)과 비교해 상승 폭이 0.1%포인트 낮아졌지만 넉 달 연속 2%대다. 특히 석유류 가격이 6.1% 뛰며 물가 오름세를 이끌었는데 고환율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올해 2월(6.3%)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김웅 한은 부총재는 이날 오전 ‘물가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석유류는 국제 유가 하락에도 높았던 환율 영향으로 상승폭이 소폭 확대됐다”고 주목했다. 이에 한은은 생활 물가가 2% 후반으로 여전히 높은 만큼 환율이 물가에 미칠 영향, 겨울철 농축수산물 가격 추이 등을 유의하면서 상황을 점검하겠다고 했다.

고환율이 국가의 경제 성적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표적인 지표가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소득(GNI)이다. 두 지표는 각국 통화로 집계한 명목 수치를 달러로 환산해 국가별 순위를 매기는 방식인데, 원화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한 한국은 경쟁국에 비해 두 수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산출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연말 환율 종가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재무제표 작성과 실적 평가, 환리스크 관리의 기준이 되는데 올해 종가는 역대 3위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부담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내년 원/달러 환율이 평균 1420∼1440원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바클레이스캐피탈은 1490원을 전망하며 1500원에 육박할 수 있다고 봤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1395원), 골드만삭스(1390원), 노무라(1380원) 등 일부는 1300원 후반대를 전망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내년 전망치를 1400원으로 제시하며 “미국 달러화 약세, 경상수지 흑자 기조 유지 등으로 올해보다 원화 약세 흐름이 완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혜림·김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