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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소각 의무화 초읽기, 더 암울한 중견·중기…‘연말 정리’로 선제 대응

[헤럴드경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중기중앙회가 공동 개최한 중소기업 입법과제 타운홀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민주당]

EB 발행·운영자금 확보 등 자구책 가속
하반기 자사주 처분 규모 12배 급증
중기 “숨통 틔워야”… 차등 유예 도입 요구도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 처리 시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부 중견·중소 기업들도 의무화 전 자사주 처분에 나섰다. 주요 방법은 교환사채(EB) 발행 등을 통한 실탄 마련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은 이달 중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처리될 공산이 높다. 여당은 1년간의 유예기간을 주겠다고 공언했으나, 자사주가 많은 기업들의 경우 한꺼번에 자사주 처리가 어렵다. 법 유예 기간 내에 최대한 자사주를 처분하려는 기업들의 자구책 역시 속도가 높아질 공산이 크다.

▶與 ‘코스피5000’ 시대… 1월 중 상법개정안 처리 공언=정치권과 중기 업계 등에 따르면 민주당은 당내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 하는 것을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1월 중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의 핵심은 자사주를 취득한 날부터 1년 이내 소각을 의무화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한다. 기존 보유 자사주의 경우 6개월의 시간을 더 부여해 1년 6개월 안에 반드시 소각해야 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중소기업 중앙회를 찾았고, 함께 온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기존 보유 자사주는 최소 1년 정도 처분 유예기간은 주어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자사주는 회사가 회사의 돈으로 매입한 자기 회사 주식을 의미한다. 의결권과 배당권이 자사주에는 없다. 대신 회사 대주주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해 대주주의 지분 비율을 상대적으로 높여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또는 자사주를 활용해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등의 방식으로 회사에 자금을 끌어다 쓰는 용도로도 활용됐다.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나 회사 자금 또는 직원 복지 차원으로 쓰는 것 역시, 소액주주들 입장에선 피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다.

여당이 ‘코스피 5000’을 타이틀로 내걸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입법에 속도를 내는 것 역시 자사주가 소액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경우 증시의 신뢰도가 낮아지고, 이는 증시를 끌어올리기 어려운 원인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자사주 보유율 상위권에 중소·중견 기업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점이 쟁점이다. 시장에선 그간 중소·중견 기업들이 자사주를 소각 없이 장기 보유 하거나, 필요할 때마다 시장에 재매각, 교환사채(EB) 발행 재원으로 활용, 임직원 보상·복지 명목의 교부 등으로 활용해 왔다는 비판이 반복됐다. 소각은 ‘주주환원’이지만, 처분은 ‘회사 목적의 활용’이 될 여지가 크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4일 서울 마포구 중소기업 DMC 타워에서 열린 ‘2025년 명문장수기업 수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영흥·신풍제약 EB 발행=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앞두고 기업들이 자구책을 강구하는 방식은 EB 발행이다. EB는 추후 특정 시점에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채권인데, 자기주식을 처분해 EB를 발행할 경우 회사 유동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교환사채를 발행한 회사를 영흥(62억원), 신풍제약(115억원), 조광페인트(68억원) 등이다. 교환사채 발행을 위해 처분한 자사주는 전체 발행 주식수의 2%~10%로 다양했다. 이외에도 SIMPAC은 사내복지를 목적으로 91억원의 자사주를 처분했으며, 대창은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82억원어치의 자사주를 처분한 것으로 확인된다.

자사주 처분이 늘어난 것은 지난해 하반기 두드러진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상장기업들의 자사주 처분 규모는 652억원에 불과했으나, 하반기엔 8091억원으로 12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공언되면서 자사주에 대한 선제적 처분에 기업들이 대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자사주 보유가 문제가 될 수 있는 기업들 상당수가 중소·중견기업이란 점이다. 금융정보회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가운데 자사주 보유율 상위 100개 기업 가운데 84곳이 중소 중견기업이었다. 시장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가시화되자, 기업들이 ‘의무화 이전’에 자사주를 다른 목적으로 활용해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라며 “유예기간이 있더라도, 결국 자사주를 ‘보유→소각’으로 정리하라는 방향이어서 중소·중견의 대응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

▶중기 업계 “유동성 숨통부터”… 처분 유예 요구 거세=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중소기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미 보유 중인 자사주까지 일률적으로 소각 시점을 못 박는 방식은 중소기업의 경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중기업계는 중소기업들의 자사주가 대기업처럼 주가 관리나 지배구조 정비 수단이 아니라, 투자·위기 대응을 위한 ‘비상 유동성 자산’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경기 침체, 원자재 가격 급등, 수주 공백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자사주가 기업 운영의 마지막 선택지로 기능해 왔다는 설명이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지난해 12월 민주당 지도부를 만나 “기존에 매입한 자사주는 신규 투자나 긴급 운전자금이 필요할 때 처분해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최소 1년간의 처분 유예기간을 부여해 달라”고 건의했다. 민주당 역시 이에 일부 호응하며 1년 유예를 약속했다. 다만 민주당은 유예 이후에도 계속 보유하려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통해 주주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함께 거론됐다.

중기업계는 법안 처리 과정에서 자사주 보유 구조와 유동성 현실을 함께 고려한 ‘차등적 유예’ 또는 ‘보유 목적별 예외’ 논의가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동일 선상에 놓고 자사주를 바라보는 것은 무리”라며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라는 신호가 되면, 중소기업은 앞으로 아예 자사주를 취득하지 않거나 투자 여력을 더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