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비관세협상 긴장 속 외교·산업 엇박자

여한구, 릭 스위처 USTR부대표 면담
외교부 출신 의원, 통상복원 발의 논란
이언주 의원 “협상중 혼선 주면 안돼”


여한구(오른쪽)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달 19~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 대표를 만나 양국간 통상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산업통상부 제공]


미국의 관세 재인상 여부를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미 통상당국 고위급 면담이 11일 서울에서 진행됐다. 미국 측은 이 자리에서 비관세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11일 산업부에 따르면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릭 스위처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모처에서 면담을 가졌다. 관세 협상은 미 상무부가 총괄하고 있지만 농산물 검역, 디지털 규제와 같은 비관세 분야의 세부 협상은 USTR이 담당하고 있다.

스위처 부대표는 전날 방한했으며 통상교섭본부와 외교부 등 여러 당국자와 면담이 예정돼 있다. USTR 부대표는 우리 정부의 1급인 실장급으로 평상시에는 통상차관보가 카운터파트지만 대미관세협상의 중요성을 감안해 본부장이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여 본부장이 USTR 고위급과 만난 것은 최근 한 달동안 네 번째다. 여 본부장은 지난달 미국 워싱턴DC와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현장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를 만났다. 이후 지난달 29일에서 이달 4일까지 이어진 미국 출장에서는 스위처 부대표와 만나 통상 현안을 논의했다.

USTR이 우리나라와 협상 전면에 나서는 것은 비관세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그리어 대표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관세협상을 통해 현금(투자)을 가져오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달리 그리어 대표가 맡고 있는 비관세장벽관련 성과가 없어 조급한 마음이 크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그리어 대표가 통상본부를 제치고 외교부를 상대하면서 몸값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 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과 구글에 대한 정밀 지도 허용,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추진 중단 등을 요구해 왔다.

그리어 대표는 최근 방미한 조현 외교부 장관에게 “투자는 진행이 느리고 비관세 분야는 추가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며 “더 이상 한국에만 시간을 쏟을 수 없으니 진척이 안 되면 관세를 높이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이를 두고 조 장관이 격에 안 맞는 USTR 대표와 만나면서 협상 채널에 혼선이 생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리어 대표의 격을 높혀줬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협상에 임하는 통상과 외교 라인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전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될 경우 미국 정부의 한국에 대한 관세 재인상이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특별법 통과만 되면 문제 없을 것이란 언급이었다. 두 장관의 대미관세협상에 대한 진단은 상당한 온도 차를 보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외교부 관료 출신 국회의원들은 ‘외교부에 통상 기능 복원’을 담은 법을 발의했다. 외교부 관료 출신인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인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일 외교부의 통상외교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해 관세협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통상 조직을 외교부로 이전해야 한다는 외교관 출신 의원들의 법안 발의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한창 미국과 관세협상을 진행하며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조직 이전 논의가 진행되면 파트너십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