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의 형사화 초래…순수한 경영판단 등에는 명확한 면책 필요”
권칠승 의원 “경영판단원칙 명확화, 여야·당정간 이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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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칠승(왼쪽 네번째) 더불어민주당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 단장과 김창범(왼쪽 다섯번째) 한경협 부회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10일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배임죄 문제점과 개선방안’ 세미나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경협 제공]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걸면 걸리는 범죄, 재산적 비행의 하수종말처리장, 검찰의 만능 무기 등 형법상 배임죄는 지난 70여년 동안 형법상 다른 어떤 조항보다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업 경영을 옥죄는 대표적인 경제형벌로 꼽히는 ‘배임죄’를 두고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10일 서울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배임죄 문제점과 개선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형법·상법·경영학 전문가들은 “고의나 사기성이 있는 배임행위를 용납해서는 안되지만, 순수한 경영판단 등에 대해선 명확한 면책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경제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부회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기업인들이 불명확한 요건과 과중한 형량, 중첩된 처벌 규정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해왔다”며 “모호한 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정상적인 경영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법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해소하자는 것”이라고 세미나 개최 이유를 밝혔다.
학계에서는 배임죄가 규정이 모호하고 경영판단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과도한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난 삼성물산 합병건의 경우 배임죄로 핵심 기소했지만 법리적으로는 부실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며 “배임죄로 기업을 힘들게 하는 건 잘못된 법집행이라는 생각이 들며, 기업의 재량과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아울러 배임죄 규정이 모호해 형법상 죄형법정주의가 요구하는 명확성의 원칙과 예측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인해 민법상 ‘신의칙상의 의무 위반’이 곧 범죄가 될 여지가 있는 구조가 돼, 배임죄의 성립 범위를 예측하기 어렵게 확대시켰다고 분석했다.
특히 위험범 법리를 오남용할 수 있는 문제도 지적됐다. 현실적인 손해가 없더라도 ‘손해 발생의 위험’만으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실패할 수 있는 경영판단까지도 범죄로 몰아갈 소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민간 영역의 계약 위반 등도 쉽게 처벌이 가능한 ‘민사의 형사화’를 초래해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경영의지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토론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이어졌다. 류혁선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도 “배임죄 규정의 모호성이 형사책임의 확대를 불러왔다”며 “배임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행위 당시의 규범적 판단보다는 사후적 결과 평가가 상대적으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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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 단장이 10일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배임죄 문제점과 개선방안’ 세미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경협 제공] |
독일의 경우 미수범을 처벌하지 않고, 업무상 배임죄나 특별배임죄 가중 규정이 없다. 일본은 고의 외에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꾀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이라는 엄격한 주관적 요건을 요구한다. 미국과 영국은 배임죄 규정 자체가 없고, 유사 조항이 있더라도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다.
강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일본의 형법 체계가 1953년 한국 형법 제정 과정에도 그대로 반영되면서, 배임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과 중심의 사후 평가가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결과 피고인에게 무죄 소명 부담이 집중되는 재판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기업인들이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되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이 나오기까지 불가피하게 자기방어에 자원과 역량을 투입하게 되며, 이는 결국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의 개선 방향은 대체로 일치했다. 경영판단원칙을 신설해 이익 충돌 없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합리적 결정은 배임죄의 ‘임무 위배’가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만들자는 것이다.
또 다른 안은 일본처럼 ‘명백한 목적’을 추가하거나, ‘타인의 사무’ 범위를 제한하는 등 구성요건을 정교화하는 방안이다.
홍영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부원장은 “배임죄 적용을 통해 기업인들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나 단 하나의 재산죄가 필요하다면 배임죄이기 때문에 폐지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 단장은 “경제계가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경영판단원칙의 명확화라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이 부분은 여야, 당정 간 사실상 이견이 없다”면서 “배임죄 개편의 입법 형태가 어떻게 되든, 정상적 경영판단원칙을 배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반드시 포함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