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젠슨황 ‘실리콘밸리 치맥회동’…HBM4 공급 속도 붙나

경주 APEC 회동 후 4개월 만
HBM4 막바지 인증 절차 진행
삼성 추격 속 리더십 유지 주력


지난해 10월 31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나 AI슈퍼컴퓨터 ‘DGX스파크’를 선물하고 있다. [연합]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미국에서 ‘치맥 회동’을 갖고 고대역폭 메모리(HBM) 공급을 비롯해 인공지능(AI) 사업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에 있는 ‘99치킨’에서 황 CEO와 만났다. 지난해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경북 경주에서 회동을 가진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앞서 황 CEO는 경주 APEC 참석차 방한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서울 삼성동에서 ‘치맥 회동’을 가졌지만 최 회장은 함께 자리하지 못했다.

4개월 만에 성사된 이번 ‘실리콘밸리 치맥 회동’에서는 6세대 HBM4 공급을 둘러싼 양사 협력방안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는 SK하이닉스의 경영진도 동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는 올해 하반기 엔비디아가 출시할 신형 AI 가속기 ‘루빈’에 6세대 HBM4를 공급하기 위한 막바지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성능을 충족하기 위한 최적화 작업을 거쳐 1분기 내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9일 열린 2025년 4분기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HBM4에 대한 고객사들의 선호도와 기대 수준은 굉장히 높고 당사의 제품을 최우선으로 요구하고 있다. HBM4 역시 HBM3나 HBM3E와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달 셋째 주부터 엔비디아에 HBM4 출하를 시작하는 삼성전자보다 공급 시점은 늦었지만 SK하이닉스는 그동안 엔비디아와 협력하며 쌓은 신뢰와 양산 경험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삼성전자가 업계 최고 성능을 앞세워 HBM4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향 HBM4 물량의 70%를 점유하면서 시장 주도적인 지위를 계속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한 이력이 있는 미국 마이크론이 HBM4에서는 성능 미달로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도 호재다. 엔비디아로선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이어온 SK하이닉스에 대한 의존도를 단번에 낮출 수 없는 상황이다.

최 회장의 이번 미국 출장을 계기로 HBM 외 다른 메모리 반도체 제품의 공급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엔비디아의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 ‘베라’에 들어갈 AI 서버용 메모리 모듈 소캠(SOCAMM)과 낸드플래시 등을 놓고 양사의 긴밀한 협력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개의 저전력 D램(LPDDR)을 묶은 소캠은 HBM처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공급전을 벌이는 제품이다. CPU와 결합해 소비전력을 절감하는 역할을 한다.

SK하이닉스가 향후 5년간 100억달러(약 14조4000억원)를 들여 미국에 AI 설루션 회사인 ‘AI 컴퍼니’ 설립 계획을 발표한 만큼 최 회장은 SK그룹 차원에서 엔비디아와의 접점 확대를 모색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AI 컴퍼니를 통해 미국의 혁신적인 AI 기업에 투자하며 협업 관계를 구축하고, 여기서 확보한 역량을 SK그룹과의 시너지로 확대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고은결·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