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전사업장 의무화’…20년만에 대수술

노사정 첫 핵심 구조 개편 합의
사외적립 의무화로 ‘받을 권리’ 보장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 병행 추진
실질적 노후소득 보장 전환 분기점


앞으로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 도입이 단계적으로 의무화되고, 수익률 제고를 위해 운용 방식으로 ‘기금형’이 병행 도입된다.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는 6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발족한 노사정 TF에는 고용노동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중소기업중앙회, 청년, 전문가 등이 참여했다.

이번 선언문은 2005년 제도가 도입된 후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퇴직연금 제도의 구조적 개선 방향에 대해 노사가 합의를 이룬 첫 사회적 선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러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노사정은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를 핵심과제로 집중 논의했고, 이번 공동선언에서 기본 방향에 합의했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퇴직급여의 사외적립 원칙을 분명히 한 데 있다.

현재 퇴직급여는 사업장 내부 적립과 퇴직연금 적립이 혼재해 있어 체불과 미적립 문제가 반복돼 왔다. TF는 모든 사업장이 퇴직급여를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해 근로자의 퇴직급여 수급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다만 구체적인 단계와 시기는 영세중소기업 실태조사를 진행한 후 결정하기로 했다.

2005년 처음 도입된 퇴직연금은 2012년 이후 신설된 사업장에 도입이 의무화됐지만, 미도입 사업장에 대한 과태료나 형사처벌 규정은 없다. 2024년 기준 퇴직연금 도입 사업장은 43만5000개로 도입률은 26.5%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도입률이 92.1%에 달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10.6%에 불과하다.

노사정은 중도 인출이나 일시금 수령 등에 대한 근로자의 선택권은 현행 퇴직연금제도와 동일하게 보장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아울러 노사정은 사외적립 의무화가 영세·중소기업 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며 중소기업 부담 완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사외적립 의무화와 함께 노사정은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에도 합의했다. 기존 계약형 제도와의 공존을 전제로, 기금형을 병행 도입해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가입자가 아닌 특정 운영 주체가 사용자 납입 부담금으로 공동의 기금을 조성, 자산을 운용하는 방식을 뜻한다. 기금화를 하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실제 근로복지공단이 중소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운영 중인 기금형 퇴직연금 푸른씨앗은 3년여 누적 수익률 26.98%를 기록했다. 반면 2005년 제도 도입 이후 국내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2.07%에 머물렀다.

노사정은 하나의 사업장에서도 계약형과 기금형을 동시에 도입할 수 있고, 이 경우 사업장은 가입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도입 방안으로는 확정기여형(DC형)에 적용하고, 금융기관 개방형·연합형을 신규 도입하면서 ‘푸른씨앗’은 300인 이하 사업장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다양한 유형의 기금형 퇴직연금을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라는 점 또한 분명히 했다.

선언문에는 ‘수탁자 책임’ 원칙도 명시됐다.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자산인 만큼, 기금을 운용하는 수탁법인은 오직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 기금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해상충 방지, 투명한 지배구조, 내부통제 강화와 함께 정부의 면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수탁법인 이사회와 기금운용 전담기구의 역할과 책임도 제도적으로 정비하기로 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이번 노사정 공동선언은 퇴직연금 제도 도입 이후 20여 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핵심 과제에 대해 노사정이 처음으로 사회적 합의에 이른 것”이라며 “정부는 합의 사항이 제도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구체적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법률 개정이 국회에서 원활히 논의·처리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으로 퇴직연금 제도의 선택지가 확대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특히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의 적용 대상을 300인 이하 사업장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한 점과, 가입자의 수급권 보호를 제도 운영의 핵심 원칙으로 명확히 한 점은 퇴직연금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퇴직연금 제도 개편의 큰 방향은 확인됐지만, 의무화 이행을 담보할 제재 규정과 기금형 퇴직연금의 운용 주체 등 핵심 사안은 공동선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제도의 실효성 논란을 해소할 구조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고, 이번 합의만으로는 현장 이행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