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재생에너지 대전환, 전기차 양방향 충·방전 기술


#2030년 오전 9시. 직장인 A씨는 주차장에 세운 전기차에 충전기를 연결한다. 충전을 위해서가 아니다. 퇴근 때 필요한 양만 남기고 지난밤 저렴하게 충전한 전기를 판매하기 위해서다. A씨는 주차 중 충전기를 꽂아두는 것만으로 전기요금 절감 효과를 얻는다.

이처럼 전기차 배터리를 ‘에너지 스펀지’처럼 활용해 ‘이동형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쓰는 기술을 양방향 충·방전(V2G: Vehicle to Grid)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은 제주도는 공급 과잉으로 발전을 강제로 멈추는 일이 빈번하다. 날씨에 따라 생산량을 예측할 수 없는 ‘간헐성’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도입 중이지만, 만약 남는 전력을 전기차가 흡수해 부족한 시간대에 다시 방전한다면 어떨까?

우리나라 승용차의 대부분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주차장에 머문다. 이러한 주차장들은 전력 수급 상황에 따라 충전소가 되기도 하고 때론 발전소가 될 수도 있다.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력망을 안정화하는 핵심기술이 바로 V2G 기술이다.

우리가 V2G 기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나라는 전력망이 고립된 ‘에너지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중앙 발전소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늘 위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V2G가 보편화되면 도로 위 수백만 대의 전기차가 거대한 ‘분산형 발전소’가 되어 전력망의 빈틈을 메우게 된다. 전력 공급의 주도권이 중앙에서 개인으로 분산되는 전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신차 보급 비중에서 전기차가 2030년 40%, 2035년 70% 이상으로 확대되고 이 중 일부만 V2G에 참여하더라도 원전 수기와 맞먹는 GW 규모의 유연성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결국 V2G는 기후 위기 대응과 재생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핵심 자원’이 될 것이다.

에너지 전기 요금 절약 스타트업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영국 굴지의 전력회사로 성장한 옥토퍼스(Octopus)는 2024년 영국 최초로 V2G 요금제를 출시했다. 이틀 동안 총 12시간 충전기를 연결하면 전기차 고객에게 무료 충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영국 사례가 보여주듯,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제도 마련과 실증에 나설 때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생태계 조성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업과 한국전력 등이 참여한 ‘V2G 상용화 전략 추진 협의체’가 출범했다. 배터리 수명 검증부터 합리적 요금 설계까지 담은 ‘(가칭) 전기차 양방향 충·방전(V2G) 종합계획’도 올해 상반기 중 발표될 예정이다.

일론 머스크는 “미래의 화폐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 했다. 전기를 저장하고 이동시키는 능력은 곧 국가 경쟁력이다. 에너지를 소비하던 국민이 스스로 전기를 공급하고 거래하는 ‘참여형 에너지 전환’의 실질적인 주체가 될 것이다.

V2G 기술은 누구나 에너지 생태계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앞당길 것이다. 거목 한 그루가 홀로 숲을 지탱할 수는 없다. 수천 개의 뿌리가 서로를 지탱할 때 숲은 수많은 비바람을 견뎌낸다. 중앙 발전소의 짐을 수많은 전기차가 나누어질 때, 대한민국은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자생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호현 기후에너지환경부 제2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