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무서워 모험투자 기피…“기업가정신 실종”
정부, 4일 ‘경제형벌 합리화TF’ 2차 회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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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별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기업 경영 리스크 해소를 위한 배임죄 폐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경제형벌 합리화 TF’는 오는 4일 2차 회의를 열고 경제형벌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북악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일대 빌딩.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 세계 최대 법률보험회사 독일 아락은 1997년과 2011년 투자 손실로 인해 배임죄로 기소됐지만 독일 연방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 받았다. 연방대법원은 “신규사업 투자는 경영자의 경영 행위로 자율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독일 주식법 제93조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시하고 “경영진의 결정이 적절한 정보에 근거하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이뤄진 사실이 합리적 방법으로 인정될 경우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예외사유를 두고 있다.
독일은 1851년 세계 최초로 배임죄를 명문화했지만 이처럼 경영진이 기업 이익을 위해 신중히 판단하고 결정한 일이라면 기업에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단순 행정의무 위반까지 배임죄로 형사 처벌하는 데다 관련 규정도 많아 중복 제재라는 비판 속에 배임죄 폐지론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2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법무부 차관을 공동단장으로 하는 ‘경제형벌 합리화 TF(태스크포스)’가 오는 4일 2차 회의를 열고 부처별 경제형벌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9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형법상 배임죄 폐지 계획을 포함한 ‘경제형법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세부적인 대체입법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상법 1·2차 개정안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3차 개정까지 속도전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여당은 전날인 1일 자사주 소각 의무 등을 담은 3차 상법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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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배임죄는 정부가 제시한 경제형벌 합리화 5대 기본원칙(책임성, 시의성, 보충성, 형평성·정합성, 글로벌 스탠더드)에 모두에 부합하지 않는 대표적인 과잉 형벌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배임죄에 대해 ▷형법(일반/업무상 배임) ▷상법(특별배임) ▷특정경제범죄의 가중처벌법(특경법)까지 촘촘한 ‘3중 처벌’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특경법은 배임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형법상 살인죄(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와 유사한 수준이어서 형평성에 맞지 않고 선진국의 법 체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라는 비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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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제2차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제2차 당정협의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제2차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우리나라 배임죄는 그동안 고의나 과실이 아니라 정상적 경영판단으로 발생한 투자 손실까지 사후에 형사 책임을 물어 처벌해왔다. 이는 책임성·시의성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기업가 정신을 저해해 신사업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자동 심장충격기를 만드는 국내 의료기기 제조업체 A사는 2018년 신규 사업에 뛰어들며 B사를 인수했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악재가 겹치면서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A사는 B사로부터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당했다. 사건은 불기소 처분이 났지만 A사는 검찰 수사와 상장실질심사를 동시에 받으며 경영 압박에 시달렸다.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등의 제재 수단이 이미 존재하지만 이처럼 배임죄로 형사 처벌하는 관행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고소 남발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실제로 2022년 기준 특경법상 횡령·배임죄 무죄율(11.4%)은 전체 형사사건 무죄율(3.1%)보다 3배 높았다.
국내 경제단체 5곳은 지난해 6월 대선을 앞두고 발간한 ‘미래성장을 위한 국민과 기업의 제안’ 공동제언집에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위험만 있어도 행위를 처벌하는 배임죄 규정 때문에 기업인들은 모험적인 투자를 기피하고 보수적인 경영에만 주력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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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별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기업 경영 리스크 해소를 위한 배임죄 폐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경제형벌 합리화 TF’는 오는 4일 2차 회의를 열고 경제형벌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사진은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 부산=임세준 기자 |
산업별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기업 경영 리스크 해소를 위한 배임죄 폐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경제형벌 합리화 TF’는 오는 4일 2차 회의를 열고 경제형벌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사진은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 부산=임세준 기자
정부의 경제형벌 합리화 움직임에 따라 우리나라도 미국·영국처럼 배임죄를 완전 폐지하고, 사기죄나 과징금 등의 금전적 제재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형법(업무상 배임)과 상법, 특경법상 배임죄를 폐지하더라도 형법상 일반 배임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실질적인 효과는 떨어지는 만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기업들은 배임죄 개편과 함께 ‘경영판단원칙’을 상법·형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회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 경영 결정을 한 이사·경영자에게 곧바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원칙이다.
1차 상법 개정으로 이사충실의무가 주주로 확대되면서 이사들이 짊어져야 할 사법 리스크가 커진 만큼, 기업인들의 전문적 경영 판단을 인정하고 불필요한 소송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통해 명확한 법적 기준이 세워지고, 예측 가능한 법 집행이 이뤄지면 기업 경영에 활력이 생기는 동시에 투자와 혁신을 통한 잠재성장률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1988년 미국 델라웨어주 대법원 판례로 처음 정립된 이래 미국, 영국, 일본 등은 판례로 운용하고 있고 독일은 2005년 주식법에 명문으로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2004년 대법원 판례에서 처음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주요국이 주로 민사사건에 적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민·형사 모두 적용 중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배임죄 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시 주요 고려사항으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면책 ▷배임죄 면책 외 손해배상 면책 등을 꼽았다. 현재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하는 내용의 형법·상법·특경법 개정안이 국회에 다수 계류 중이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최근 이사 책임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진 만큼 경영판단 의사결정을 보호하는 제도가 균형있게 마련돼야 한다”면서 “최근 정부가 ‘경제형벌 합리화 TF’를 발족하여 1년 내 전 부처의 경제형벌 규정 30%를 정비한다는 구체적인목표를 정했는데 국회에서도 기업의 투자결정과 혁신 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배임죄 제도개선 논의가 조속히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에너지·방산 등 전 산업을 둘러싸고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기업 경영 리스크 해소를 위한 배임죄 개선은 조속히 이뤄져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